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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란
여름의 한가운데서 여름인 줄 모른다. 긴 장마와 찌는 폭염, 찝찝한 습도에도 그렇다. 더위와 싸우는 업무에 열중하면서도 도무지 계절을 모르겠다. 보통 달의 숫자가 바뀌면 계절이 온 줄 안다. 7월과 8월은 분명 여름일테다. 선풍기를 꺼내고 반팔을 내어 입는 시기, 에어컨의 누진세를 걱정하는 시기다. 그럴 때 “왔구나”라며 체감하게 된다. 기상청이 고지한 숫자들도 변화를 감지하게 한다. 이렇게 물리적인 환경들이 바뀌면 계절이 변했다는 것을 인지한다. 기계적으로 주입되는 “계절의 침입”이다. 뇌에 새겨진 여름의 증거들이다.그런데 사실 계절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머리로 받아들이는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살갗이 느끼는 기억, 온몸을 관통하는 바람, 그 사이마다 머물다간 향기다. 북서풍과 남동풍 안에 스며온 그와 나만이 나눈 교감이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그 때의 분위기다. 계절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게 살며시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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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오늘 주문했는데 “내일 온다”고 하고, 내일이 돼서 또 주문했는데 “오늘 온다”고 한다. 책 두 권이 오는 속도, 참 빠르다. 고마운 마음으로 약속된 오늘을 기다리고 있다. 과연 올까… 밤이 깊어가는데 아무래도 안 오는 듯하다. 입가에 미소가 띠인다. 그리고 흐뭇하다. 너무 빨리온다 싶었다. 그렇게나 빨리 필요했다면 내가 서점에 가는 게 맞겠지. 아무리 “배달”의 민족이라지만 조금 느긋해도 좋겠다. 기다리는 시간만큼 아끼는 마음도 들테고 성취 전에 목표를 잊어버리는 여유도 가끔은 필요하리라. 인과에 얽매이지 않아도 때가 되면 다 되는 법이다. 다만 이것은 받는 마음이고, 주는 마음에서는 또 최선을 다해야겠지. 아름다운 목적 앞에 결과를 연연하지 않는 진정성이랄까. – 선물(present) / 18.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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샵# or 플랫♭
A에게 전한 말은 대부분 어떤 누군가에게 전달된다. 빠르게 혹은 느리게 전파된다. 때로는 특정인 B에게 전달된다. 이것은 의도한 바 일 수도 있다. 반면 아무에게도 전해지지 않기도 한다. 이 흐름은 대체로 추측하기 어렵다. 말 그대로 랜덤이다. 그래서 어쩌면 굳이 예측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말들은 일상적인 것들이다. 그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두면 된다. 누가 언제 무얼했다는 일들은 기억할 필요가 없다. 빨리 잊어버릴수록 뇌가 가벼워진다. 그런데 여기에 약간의 디테일을 부여할 수 있다. 그 말의 높낮이에서 입장이 다소 달라지는데 샵# 또는 플랫b에서 주체의 마음이 드러나게 된다. 음(音)이 달라지는 것은 고의성 유무에 따라 마음이기도 하고, 능력이기도 하다. 둘 다 중요하다. 음정이 불안한 그 말은 일상적인 대화로 별 것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격을 알 필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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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기 사진
초등인지 중등인지 때를 모르겠다. 제주도였다. 방정리하다가 앨범에서 우연히 찾았다. 사진기 앞에 어색한 표정이지만 분위기는 맘에 든다. 빨간 옷과 하얀 말이 잘 어울린다. 검은 색 모자도 좋고… 내 차도 이렇게 꾸며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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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만 있으면 되었다
운동화만 있으면 되었다 끈은 내가 묶고 물은 안먹어도 그만 그것은 과연 오르막이었을까. 앞으로 달리고 있다는 발걸음은 신경을 가벼이 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잃게 하였다. 타인의 안위는 가식이 된 송장으로 친구의 도시락을 걱정하던 소년은 사라지고 순수한 동감은 굳어버린 시선을 비켜갔다. 활력과 감성은 멀어지고 생기는 고장난 태엽처럼 소리를 내며 후퇴했다 사랑은 애송이의 가십인양 그저 저렴한 술안주로 전락했다. 소년이 스무해를 거쳐 서른 즈음이 되는 것은 세상의 따스함을 욕정으로 밀어내어 속물의 지위를 성취하는 것이었을까 그것은 과연 오르막이었을까 조금 더 오르면 끝없는 지평선과 태양이 비추는 곳이었을까 차가운 바람과 뜨거운 태양 산산히 부서내리는 사막의 모래알 그 위에 떠 있는 공허한 발걸음 경사의 신기루 속에 방향마저 잃은 채 이젠 곧 맨발을 드러내야 하겠지 – 운동화만 있으면 되었을까 2012-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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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era & Musica
Littera & Musica 문학과 음악. 2018년 삶의 방향이다. 익숙한 고정된 개념에서 탈피하고자 라틴어를 사용했다. 글과 음에 더욱 다가가도록 노력해야겠다. littera : 글. 문학. 학예. 시. 문예. musica : 음악. 음률. 리듬. # 2018년 홈페이지 편집 문체 : Arial / 크기 : 14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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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마음
나는 괜찮은데 내 마음이 힘들어할 때가 있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데 왜 심장은 아픈지 불협의 관계에 놓인다. 버스 창 밖 풍경에서 불현간 마음이 흐트러진 때였다. 무엇때문인지 마음이 맘대로 시간을 거슬러갔던 시간. 아무렇지 않게 지나 자연스레 묻어뒀던 일상이 성급하게 아픔이 되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창 밖 풍경들이 의미 없이 스쳐지나가고 기억이 유리창 위로 나타난다. 아픔이다. 몰랐던 상처다. 아니 잊으려했던 옛일이다. ‘사실은’ 혹은 ‘우리는’으로 시작할 이야기가 그렇게 묻혀있다. 나는 괜찮은데 마음은 기억하는 일. 분명히 머리와 심장은 별개인 증거다. 오늘은 조곤히 심장을 따른다. – 유리창 너머 / 2017.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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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처음이란
많은 사람들과의 첫만남을 기억한다. 그들의 첫인상 혹은 우리의 첫 대화 아니면 우리의 첫 소통이랄까. 이어짐에 대하여. 그 순간들이 인상 깊어서 기억되거나 혹은 자주 그 때를 생각하면서 각인됐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것은 강렬하게 내게 스며든 시간의 한 장면이다. 그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될지라도 나에게는 조금은 특별히 기억되는 당신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에게는 좋은 기억이며 잊고 싶지 않은, 그리고 마음으로 그 사람을 내안에 초대하기 어렵지 않았던 많은이들과의 유쾌한 첫만남을 기억한다. 그것이 우정으로 발전하기도 했고, 사랑이 되기도 했다. 애틋함이나 즐거움, 아련한 추억들로 남아있는 스틸컷은 첫만남이었다. 그래서 언젠가 혹 누군가에게 우리가 언제 처음 만났는지 그때의 나의 느낌은 어땠는지 그때가 가끔 생각이 나고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마치 어제와 같다고 얘기하며 여전히 잘 기억이 난다고 웃으며 말을 건넨다면 그것은 가슴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