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만 있으면 되었다
운동화만 있으면 되었다
끈은 내가 묶고 물은 안먹어도 그만
그것은 과연 오르막이었을까.
앞으로 달리고 있다는 발걸음은
신경을 가벼이 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잃게 하였다.
타인의 안위는 가식이 된 송장으로
친구의 도시락을 걱정하던 소년은 사라지고
순수한 동감은 굳어버린 시선을 비켜갔다.
활력과 감성은 멀어지고
생기는 고장난 태엽처럼 소리를 내며 후퇴했다
사랑은 애송이의 가십인양 그저 저렴한 술안주로 전락했다.
소년이 스무해를 거쳐 서른 즈음이 되는 것은
세상의 따스함을 욕정으로 밀어내어
속물의 지위를 성취하는 것이었을까
그것은 과연 오르막이었을까
조금 더 오르면 끝없는 지평선과 태양이 비추는 곳이었을까
차가운 바람과 뜨거운 태양
산산히 부서내리는 사막의 모래알
그 위에 떠 있는 공허한 발걸음
경사의 신기루 속에 방향마저 잃은 채
이젠 곧 맨발을 드러내야 하겠지
– 운동화만 있으면 되었을까
2012-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