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스무살을 시작했다
지난주 서울에서 멀지 않은 서울로 출장을 가다가
스무살에 살았던 동네로 우연히 접어들었어.
처음 서울 올라와 살았던 곳.. 학교에서 그다지 가깝지도 않았던 곳…
그러다가 문득 참 행운이 깃든 곳이란 걸 알았던 곳이야.
거기서 2년을 살았어.
버스를 타고 학교에 통학했는데
아침에 버스 안을 뚫어지게 보다가 몇 대쯤은 지나보냈어.
사람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고, 그 많은 사람 중에 내 사람이 없어서..
한번은 학교에서 세 시간을 넘게 걸어서 왔던 그곳…
그 전에도 후에도, 앞으로도 다시는 걸을 일이 없는 그곳….
그길 옆에서 빨간 신호를 보고 멈춰섰어.
그때 우린 걸으며 어떤 얘기를 나눴을까.
변한 것들 사이로 변하지 않고 남은 것들이 감사하게도 기억을 장식해.
케이에프시 할아버지, 어두컴컴한 국민은행, 차 소리에 놀랐던 지하도..
지방에서 온 촌아이가 불고기버거를 먹다가 소스를 다 흘렸던 곳…
그렇게 또 사투리를 써가며 서울여자에게 알짱대던 곳….
풍경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와, 아련함이 유리창을 넘어 스며오더라구…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모습까지도, 무엇이 널 그렇게 취하게 했을까…
왜 그 뒤로도 단한번도 묻지 못했을까.
태엽을 되돌리면 거추장스러운 수식들이 붙을까봐.
조용히 창문을 열고..
더 조용한 바람을 들여…
그 향기에 코를 기대는 나….
여기서 스무살을 시작했다.
햇살에 눈뜰 때 그곳에서 스무살을 시작했다
– 나의 그리운 스무 햇살 / 2016.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