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이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
평소에 알고 있던 삶의 유한有限이 새삼스레 체감될 때 무력감을 느끼곤 한다. 이럴 때 손 내밀어 잡으려는 것은 오로지 무한無限의 산물이다. 공허한 희망이란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한다.
생명이 한시적인데 영원한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죽고 스러져 자취를 잃는데 그 어떤 것이 그곳에 한 톨의 기억을 남길 수 있을까. 결국은 무력감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되돌아가기 일쑤다. 패배자의 모습이 반복된다.
영원하다는 것. 영원하다는 것. 과연 무엇이 영원할 수 있을까. 영원하다는 증거와 맹세만 남기고 흩어져간 많은 약속들을 기억한다.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미라를 만들고 냉동인간을 만들다한들 남질 못했다. 그 차가움은 현기증이 나는 강한 햇살 아래에서도 다시는 온기를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생명은 유한하다. 이는 바꿀 수 없는 진리다. 우리의 근원이다. 이러한 근원의 한정에서 태동했고 많은 시간을 돌고 돌아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래서 사람은 ‘육’에 기댈 수 없다. 출구 없는 희망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가치가 필요하다. 물리적 실체의 영원이 아닌, 의미의 무한이다. 애초에 출구를 찾을 이유가 없다. 단지 그곳에 남겨지는 것이다.
따라서 삶의 목표는 물질의 번영이 아니라 영원의 지속에 있어야 한다. 그 깊이에 대한 열렬한 도전이 필요하다. 역정적인 분노가 그곳을 향해야 한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잊히지 않겠다는 열정으로 분노가 가득차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조물되었다. 끝의 다음에 있을 시작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다.
수 천 년을 건너 전해진 모든 것들에 경의를 표하게 되는 지점이다. 생명은 없어졌지만 문학이 남았다. 글과 음악이 전해졌다. 생각과 이상을 가득채운 철학이 전수됐다. 우리 삶 주변에 머물던 실체가 없던 그 이념이 영속되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운명이 이러하다.
우리는 무한대로 살고 싶다. 지금 이대로 변함 없이 영원하길 원한다. 너무나 쉽게 또 다시 공허한 희망으로 돌아왔다. 그 많은 선인들이 이 명제와 싸워왔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영원한 빛으로 가는 출구는 가시적이지 않다. 영원은 그 자체로 시간을 넘어 그 자체가 궁극적인 불멸이 되는 것이다.
내가 사랑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러하다. 삶의 운명에서 우리가 만들어낸 역정적 분노가 4차원적인 흐름으로 들어가 자취를 만들길 바라본다. 나의 사랑은 당신의 육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나의 지금과 나의 마지막날을 지나 또다른 시작에서도 꺼지지 않을 빛으로 당신을 지키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온 이유는 오직 그것이다. 내가 찾을 의미는 오직 그것이다. 내가 사랑할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다. 영원히 공허하지 않을 실체로 기억되는 것, 그것으로 우리가 남겨지는 것을 꿈꾼다. 내가 그렇게 사랑한다.
너를 영원히 사랑한다는 나의 확언은 바로 이 ‘불멸’을 지향한다. 현재를 풍부하게 채우는 것을 넘어서 미래가 현재가 되며, 과거가 현재가 되는 시간이 초탈해진 영원이다. 내 인생의 나침반은 오직 너라는 선물이다. 너를 사랑한다는 말은 바로 이 진리를 매일매일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Tempus Fugit, amor manet. (시간이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
18.01.08. / 시간이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