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호 선수 직관 후기(2008년)
2008년 여름이네요. 오래 전이죠.
찬호팍은 국민 누구에게나 그렇듯 저에게도 우상이었습니다. 불굴의 아이콘이죠. 이 시기는 다저스-텍사스-뉴욕메츠를 거쳐 다시 LA로 돌아온 때였습니다. 등번호 61번을 달고 말이죠. 노장임에도 부상을 털고 구원투수로도 성공한 때였습니다.
저는 2달 가량 뉴욕에 있었고요. LA는 서부죠. 그래서 동부로 원정 오는 일정을 확인했고, 다행히 필리스 원정이 있어서 필라델피아 여행 일정과 맞추었습니다. 표를 어떻게 구했는지 모르겠네요. 인터넷으로 샀겠죠. 그땐 스마트폰이 없었어요. 박찬호 선수는 당시 구원투수로 뛰고 있었습니다. 등판을 할지 안할지 모르는 상황이죠. 그래도 경기 시작 전 볼 수 있을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이 뛰었습니다. 비록 전성기는 지났지만 영원한 전설이니깐요.
2008년 8월 24일이었습니다. 하루 전날은 지금은 엄청 유명해진 클레이튼 커쇼가 등판해서 패전투수가 됐습니다. 찬호형님께서 신인 커쇼와 같이 뛴 적이 있다는 것을 아는 분은 많지 않으실 겁니다. 커쇼는 그해 5월에 데뷔했습니다. 전날인 8월 23일은 또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야구가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날입니다. 박찬호 선수도 당시 경기를 시청했다고 말했고 후배들이 자랑스럽다고 했죠. 그리고 그 다음날 경기에 제가 박찬호 선수를 만났습니다. 경기 전 만난 한국인은 저뿐이었습니다. 기억은 못하시겠죠. 반갑지 않으셨나요?ㅎ
경기 시작 전 몸풀기 할 때 박찬호 선수를 볼 수 있었고요. 운동이 끝난 후 싸인볼을 받았습니다. 그 뒤에 제게 공도 한번 던져줬는데 옆에 있던 사람이 글러브로 제 얼굴 앞에서 채갔습니다. ㅠㅠ 좀 서운하죠. 한국인(동양인)인 거 뻔히 알았고 저한테 던져준 공이었거든요. 찬호 형님께서는 조금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시곤 들어가셨습니다. 그래도 싸인볼을 받아서 기뻤습니다. 그런데 싸인펜 대신 볼펜으로 싸인을 받아서 좀 아쉬웠습니다. 선수께도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이날 등판했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3루쪽에서 보다가 몸풀기를 할 때 깜짝 놀라서 불펜으로 뛰어갔습니다. 필리스타디움은 외야에 불펜이 있습니다. 한참 갔습니다. 제가 오자 불펜을 둘러싸고 구경하던 미국인들이 코리언이 왔다며 자리를 비켜서 보게 해주자고 하더라고요. 홈팀인데도 원정팬인 저를 배려해주었습니다. 박찬호 선수가 레전드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겁니다. 고마웠습니다. 땡큐 필리스.
당시 경기 투수기록표를 가져왔습니다. 7회에 등판해서 1이닝 무실점 1탈삼진입니다. 선수께서는 이런 구원투수 히스토리가 좋지 않으실 수도 있는데 팬인 저에게는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투구 모습입니다.
다시 봐도 멋집니다. 누가봐도 박찬호 선수입니다. 뭉클합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야구가 금메달을 따게 된 데에는 박찬호 선수의 공이 컸습니다. 대한민국 야구인들 중 선배 박찬호를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니깐요. 현재의 류현진 선수도 찬호형님께서 먼저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 시기는 저도 열심히 살았던 시절입니다. 선수처럼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야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상을 이겨내고 다시 마운드에 선 것만으로도 저같은 대학생에게는 큰 희망이 됐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고 싶습니다. 그날 경기에 뛰어주셔서 감사하고요. 건강히 마운드에 서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조금 힘이들고 고민도 많아서 옛날 생각에 사진을 다시 찾아봤습니다.
박찬호 선수께서는 후학들과 국민들을 위해 야구를 하는 모습도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골프대회나 투머치토커 광고에만 나오시더라고요. ^^
제2, 제3의 인생을 국민들께 다시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너무 많은 짐을 드리는 것일까요.
팬으로서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좋은 곳에서 좋은 취지로 한번쯤은 다시 만나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2019년 12월 25일 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