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샌가 달리 보이는 것들
여행을 가고 싶어졌어요. 에펠탑 말고 만리장성 말고요. 타임스퀘어도 아니에요. 그저 기차 안이면 좋겠어요. 스쳐지나가는 나무들 사이 뒤로 잔디밭이 펼쳐지면 좋겠어요.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골목길도 좋아요. 지나는 사람들과 뛰는 아이들 사이로 보이는 예쁜 집도요. 유럽식 접시를 깨어 벽 위에 경계용 장식을 하거나 입구 아트리움 바닥에 장식을 해놓은 그런 집이요.
누구나 아는 그런 랜드마크 말고요. 나에게만 다가온 나의 풍경들을 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여행을 가고 싶어요. 예전엔 ‘어디가고, 어디가야지’ 했거든요. 물론 지금도 가고 싶은 도시는 많아요. 그치만 목적보다 과정에 충실해지고 싶어졌다는 얘기에요. 결과보다 과정에서 우연히 얻어지는 것들이요.
베니스에서 만난 태양, 그 일몰은 정말로 우연히 만났어요. 리도섬에서 산마르코광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햇살을 마주보고 발걸음이 멈춰졌어요. 그리고 몇 시간 동안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그곳에 앉아있었죠. 수 세기 전의 사람들도 이곳에서 그 태양을 보았을테죠. 여기에 내일도 태양이 뜰 테구요.
나중에 내 인생 단 한명의 여자와 다시 올거라 다짐했어요. 첫 해외여행이었고, 지금까지도 가장 명장면으로 남아있어요. 그곳에 있겠죠, 그 모습 지금도.
그때 이후도 한참동안 몰랐어요. 여전히 가고 싶은 여행지들의 목록을 써두고 열심히 다녔죠.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바르셀로나 등 대도시의 거대한 상징을 보고 목적을 달성하는 그런 여행이요. 매우 잘했고요, 또 좋았습니다. 그 틈틈이 감성을 위한 일정을 채우긴 했지만 잘 안됐던 것 같아요.
다 때가 있는 것 아닐까요. 이젠 생각이 바뀌네요. 어느샌가 그래요. 유명하지 않은 도시를 가도 될 것 같아요. 조용한 소도시 카페에서 커피마시면서 일상의 풍경들만 보고 와도 좋을 것만 같은 마음이에요. 힐링의 의미가 아니에요. 여행이라는 그 과정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거죠. 뭘 보고와야한다, 뭘 해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됐어요. 감성과 마음의 소리가 중요해진 거죠.
여행말고요. 또 달라지는 것들이 있어요. 이성의 사람을 만날 때요. 내 스타일인지, 내가 잘 맞출 수 있는지,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만 생각했어요. 어떤 점에서 내가 실망하는지 같은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기준들이죠. 이 또한 아마도 때가 있는 것일까요.
나 이제 우리가 살아온 결과가 맞는지 확인하지 않아요. 지금부터 나의 마지막날이 올 날까지 그 과정에 집중하고 싶어졌어요. 이건 단지 맞춰보겠다는 다짐같은 게 아니에요. 나를 바꾸겠다는 것이 아니라요, 어느샌가 달리 보이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에요.
이제 최선을 다해서 그 사람의 삶에 들어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험난한 인생의 여정에서 내가 보호막이 될 거에요. 모든 여자가 엄마로, 할머니로 변해갈 때 나 그 사람은 지금처럼 여자로 살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참으로 자신있네요!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또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목표를 설정하는 게 아니에요. 자연스럽게 우리의 관계가, 우리의 만남이, 그 어떤 곳에서도, 그 어떤 환경에서도, 내 안으로 들어와 내 것이 되는 여행같은 그런 만남이요. 너와 내가 함께 있는 그 과정 자체에 감사하는 거요.
어느샌가 내가 바라보는 사랑의 정의입니다.
어느샌가 달라진 인생의 변곡점.. 나 꼭 그대와 함께 하고 싶네요..
2018. 3. 4. / 어느샌가 달리 보이는 것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