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다움에 대해,  - 일기

[내 이야기] 집과 직장 / 서쪽이 길하다.

성인이 된 이후의 나의 거주지는 대체로 서쪽으로 이동한다.

스무살에 서울 중랑구 신내동에 터를 잡았고,
군 제대 후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자취를 했다.
졸업 후에는 친형과 함께 안양 인덕원에서 살았다.

그 다음은 관악구(중앙동, 신림동, 대학동, 서울대)에 4년 있었다.
그리고 여기 마포구 아현동으로 이사한다. 이때는 아주 미세하게 서쪽으로 이동했다.


최초 월세 10만원짜리 집에서, 다음은 전세 3,500만원 집으로,
안양 인덕원 아파트는 당시 시세로 6억~7억 정도 했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형이 결혼하면서 나는 다시 원룸으로 이사했다.
관악구에서는 전세 4천~5천 정도였고, 서울대 기숙사에도 잠시 살았다.
(대학원 1학년 때 신림동에서 살았던 집이 WORST였다.)

대학원 졸업 후 본가와 집을 합치면서 지금의 마포구로 이사왔다.
‘마래푸’라는 단지로 왔는데 처음에 4억도 안되던 집이 지금은 10억을 넘어섰다.
역시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직장 위치는 용인시 처인구가 최초였다. 그 다음은 서쪽으로 옮겨간 서초구다.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회사와, 서울연구원을 잠시 거쳤다. 가까운 거리였다.
서울연구원은 미세하게 ‘동쪽’으로 이동한 곳이다. 아주 짧게 있었다.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을 보냈고, 취업을 하면서 이동한 곳이 남산이다.
서초구보다는 경도상 살짝 서쪽에 위치한다. 여기서 1년 이상 있었고,
그 뒤 또 아주 조금 서쪽으로 이동한 곳이 서울로 7017(서울역)이다.

이렇게 나의 위치는 직장도 집도 모두 서쪽으로 옮겨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가장 처음 서울에 왔던 곳과 비슷한 경도인 동쪽으로 왔다.
15년간 서쪽으로 이동한 경로를 한 달 전에 휙 돌아 온 것이다.


미세하게 동쪽으로 이동했던 서울연구원과
미세하게 동쪽으로 이동했던 서울대 기숙사 그리고
급격하게 동쪽으로 이동한 지금은 공통점이 있다.

뭔가 내 마음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동쪽으로의 이동은 이상하게 좋지가 않았다.
서울연은 고작 한 달이었지만 최악의 기억이었고,
서울대 기숙사는 역대급으로 코를 골았던 룸메를 잠깐 만났다.
지옥이었다. 둘 다.

동쪽으로 급격하게 온 지금은 그냥 마음이 힘들다.
직장도 좋고, 사람들도 다 좋은데, 내 마음이 그냥 불안하다.

그래도 이제 동쪽으로 더 갈 일은 없을 듯하니 좋은 일만 남은 게 아닐까 싶다.
쪽에는 강남구가 있고, 용산구가 있다.
서울시청과 국회도 있고, 청와대도 있다.
역시 서쪽이 좋은 방향인 게 틀림이 없다.

나는 서쪽으로 가야한다. 생각해보니 그래서 일본도 안가본 것 같다.
중국, 베트남, 태국, 유럽은 다 비행기가 서쪽으로 간다.
너무 끼워맞추고 있는 거… 맞다… 사실 동쪽으로 갔던 미국도 좋긴 했다.

돌이켜보니 서대문구, 서대문구청 근처에 살던 여자를 좋아했었다.
그 친구와 결혼을 했어야 했나보다. 그땐 내가 서쪽이 좋은지 몰랐지.
뭐 이젠 동쪽으로 왔으니 서쪽 지역이 워낙에 많이 넓어져서
결혼 걱정은 안해도 될 듯하다.

좋은 생각만 해야겠다.

서쪽이 길한 나의 운명 / 2020. 2. 11.

 

error: Content is protected by la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