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랑종, 그 의미없음에 대해
영화 크레딧이 오를 때 사람들은 핸드폰을 꺼내어, 조금 전 직접보았던 그 영화의 ‘결말’을 확인한다. 내가 눈으로 본 것보다 사람들에게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답을 받아든다.
영화의 배경은 전국의 무속신앙을 인터뷰하는 다큐를 찍던 중, 토속신과 신내림의 과정을 취재하는 것인데 그 지역에서 잘 알려지고, 대중적인, 뿌리가 깊은 바얀신에 관한 이야기다. 일종의 답을 찾아가보려는 목적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영화 어디에도 바얀신의 정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지역민들이 인사를 드리고 재물을 바치던 바얀신의 동상(불상)만이 존재를 피력할 뿐이다. 바얀신을 영접한 주인공 ‘님’ 조차도 본 적이 없다던 바얀신. 몸으로는 느낄 수 있다던 그녀는 퇴마의식 전 신의 부재에 슬퍼한 뒤 사망한다.
전국에서 취재 대상으로 선택된 장소에서도 정답을 찾지 못한 상태에 머무는 것은, 그 (알아내려는 행위의) 의미없음에 대한 방증이다. 바얀신이 선한 신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지역민은 그렇게 믿고있다는 사실만 있다. 그것을 증명할 길은 없다. 밍에게 빙의된 신이 악한 신인지도 알 길이 없다. 둘 다 같은 신일 수도 있고, 다른 신일 수도 있고. 그 신은 하나님, 부처님, 바얀신 어떤 것이 된다해도 다를 바는 없다. 이러한 의미없음이 핵심이다.
사람들은 해석한다. ‘바얀신을 영접하지 못한 ‘노이’때문에 딸이 저주를 받았다.’ ‘신내림을 잘못하여 악령이 씌였다.’ 모두 증명이 안된다. 그렇게 정답을 찾아내려하지만 그 답은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우리는 사실의 해석을 하려하는데, 영화는 ‘사실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 영화가 다큐(페이크)형식을 빌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로 해석하지말고, 태국 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또는 미친 일(사건)의 사실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
바다에서 익사한 시신을 찾으려고 굿판을 벌인 이야기를 알고 있다. 바다에 밧줄을 던지자 그 밧줄이 바다 속으로 계속 들어갔고 거기서 시체를 찾은 일이다. 어떤 지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니, 전래동화와 같이 실제인지 아닌지 분간하기는 어렵지만 그 이야기는 현재 사실이 되어 전해진다.
인간은 이러한 ‘신’들이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빙의’를 신경정신학에서는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보기도 한다. 원한의 신인지, 사망의 신인지, 착한 조상신인지 알 수 없고, 내가 악령에게 저주를 당한 것인지, 착한 신에게 벌을 받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영역에서 그 의미없음을 받아들여야하는 것이 내가 생각한 이 영화의 엔딩이다.
이 영화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묻겠지만, 왜 거기에 이야기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지 먼저 질문했던 것이다. 영화 초반에 수많은 신들의 이름을 주인공 ‘님’이 이야기할 때 ‘바얀신’을 제외한 신들에게는 의미를 갖지 못한 우리가 아닌가.
2021.7.25. (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