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 여행기(삶의 순환 또는 연결 또는 영속)
2024년 추석 때 일이다.
미국(뉴욕, 시카고, 나이아가라)에 다녀왔다.
사실을 중심으로 쓰고, 나 역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돌아보려고 한다.
참고로 나는 2008년에 뉴욕(롱아일랜드)에 2달 거주하면서 뉴욕을 여행했었다.
[사건1: 희생자를 추모하는 날 만난 한국인]
9월 10일에 뉴욕IN 했고, 그 이유는 911 메모리얼 행사에 참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9월 11일 오전 일정을 끝내고 WTC로 향했고 경비가 삼엄했다. 당일 대통령 후보 2명과 함께 유가족 행사가 있었다.
총을 든 군인들이 대통령 경호 및 테러 유발에 대비하는 모양이었다.
오후 3시가 되자 일제히 바리게이트를 열어주었고 입장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 유가족들, 방송사 등이 남아있었고, 관광객들이 혼재됐다.
건물 부지 2개에 분수가 있는데, 그 중 한 개를 보려고 했으나 이미 사람들이 포화상태였다.
그 중 한 쪽에 서서 분수에 붙어있는 누구라도 나오면 들어가려고 대기했다.
이후 한 명이 나왔고 가까이 갈 수 있었다.
경건한 마음이었다. 시차적응이 안돼서 그런지 조금 피곤하면서, 가라앉은 마음이었고,
희생당한 영혼들에게 9월 11일 을 맞아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아래쪽을 보니 분수 가장자리를 따라서 대리석에 희생자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 기념일을 맞아 많은 꽃들이 꽂혀있었는데,
거기서 우연히 한국어를 보았다. 한국어로 추모하는 글이었는데,
영어이름과 한국이름이 같이 쓰여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우연히 한국인 여성분을 만났고, 그 분이 30세 정도에 희생당한 것을 알게 되었다.
분수가 엄청나게 크고 2개나 있는데, 우연히 내가 섰던 곳 아래에서 한국어, 한국인을 만났다는 것은 큰 우연이라 생각한다.
미국인들의 아픔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한국어를 보고, 그 한국인 분을 알게 된 것이. .
하나의 우연적인 사건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그 날 밤 다시 그곳을 찾아 메모리얼 빛의 추모(파란빛기둥)를 배경으로 다시 사진을 찍었다.
그때까지도 유가족을 위로하는 꽃과 사진이 남아있었다.
[사건2: 할머니]
오후 4시경 그곳을 떠나 휘트니미술관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구글맵을 보니 버스가 자꾸 지연되는 것이 아마도 911행사로 길이 막혀서 버스가 오지 못하는 듯했다.
그때 버스정류장에 있던 할머니 한 분이 핸드폰을 보는 내게 버스가 언제오는 것이냐며 물었다.
(뉴욕 문화는 누가 현지사람인지 몰라서, 그냥 외지사람도 잘 구분못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어서 외지사람인지는 알았겠지만… 어쨌든)
버스가 30분 정도 지연되면서 할머니와 자연스럽게 말을 나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버스를 탔고, 버스를 내가 먼저 내렸고, 그렇게 헤어졌다
그런데,
9월 12일 오전 9시~10시 경
나는 오전에 뉴욕시청(시의회)를 기점으로 브루클린 브릿지 진입부와
그쪽의 역사도심, 건물, 가로들을 보려고 했고 둘러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 아프리카 어떤 것을 기념하는 소공원(빌딩 앞 공개공지)을 보았고,
14년 전에도 이거 봤었던 것 같은데…. 하면서 기억을 되돌리는 순간이었다.
거기는 관광지도 아니고, 출근한 시간이고, 그 가로에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할머니 한 분이 고래를 숙이면서 걸어오고 계셨고,
아 뭐지 설마,, 하는 순간 그 분이 고개를 올렸고.. 내 짐작대로 어제 버스를 같이 탔던 그 분이었다.
나는 전율이 돌 정도로 깜짝놀랐고, 그 분 역시 몸을 휘청일 정도로 놀라셨다.
아니 어떻게 여기서 만나지.. 만날 수도 있지… 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 분은 노인일자리 형식으로 공공기관에서 일한다고 했다.
나 역시 공공에서 일한다고 말씀드리고 같은 부서격인 뉴욕시청의 이름을 말했다.
신기해 하시면서 시빅센터도 좋은데 링컨센터도 꼭 가보란 말씀을 하셨고,
마지막에는 헤어지면서
“Be safe, be safe, be THE SAFE”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가셨다. 뉴욕은 그렇게 안전하진 않다고…
분명히 특이점이 있는 하루였다.
[사건3: 박찬호]
며칠 뒤다. 13일의 금요일이다. 그날 저녁 7시 양키스 야구경기를 보러가려고 인터넷 카페를 통해 동행을 구했다.
그 분이 가지고 있는 표 2장 중 하나를 내가 사서 같이 보는 형식이다.
그날은 브롱스의 식물원에 갔고,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어서 편하게 둘러보았다. 꽤 좋았다.
이후 오후에는 허드슨 강쪽 공원을 보려고 했지만, 아직 시차적응이 안됐는지, 날씨도 마침 더웠고 한 찰라에
동행자께서 “오늘 야구경기 선착순 프로모션으로 유니폼 후드티 나눠줘요”
그래서 피곤한 찰라에 공원 하나 스킵하고 야구장으로 미리 향했다.
도착했더니 1시 30분 경이었다. 나는 고시티(go city) 일주일 권이 있었다.(관광지 등 자유이용권)
마침 양키스 구단 기념관 투어에 이용할 수 있어서 그걸 신청했다.
그런데 핸드폰에 간단한 문제가 발생해 다음 투어(2시)를 이용해야 했다.
그날 마지막 투어였다.
투어는 간단했다. 스타디움, 기념관, 유명레전드 등,
여기서 먼저 나는 2008년 여행당시 필리스타디움(필라델피아)에서 박찬호(당시 필리스 소속)를 만난적이 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을 딴 그 다음 날이었다. 박찬호가 후배들을 칭찬했는데, 그 다음날 한국인으로서
나 혼자 박찬호를 경기 전 워밍업 시간에 만난 일이 있다.
2024년 양키스 뮤지엄에는 양키스를 다녀간 모든 투수들을 기념하는 야구공 각 1개씩을 모아서,
투수가 포수에게 던지는 형태로 그 사이에 모든 야구공을 모아두었다. 마리아노 리베라 등 몇 백개 정도 될 듯 했다.
아는 투수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둘어보았는데..
아뿔싸, 박찬호 이름이 있었다. 다시 찾아온 뉴욕 여행에서 다시 박찬호를 보게 되다니,
특히, 이번에는 과거처럼 김하성이 방문하는 경기 일정이 없어서, 아쉽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었던 터다.
수백개의 공 중에 어떻게 내 눈 앞에 박찬호의 싸인 볼이 보였던 것일까. 이 또한 우연은 아니다.
난 박찬호가 양키스에서 뛰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사건4: 딸과 아빠]
그렇게 스타디움을 여행했고 1루쪽에서 한 소녀가 나에게 사진촬영을 부탁했다.
주변에 미국인도 많았는데 굳이 나인 이유는 혼자였기 때문이거나, 내가 사진기를 들고 있었기 때문일테다.
아빠와 같이 왔는데 기념하고 싶다고 했다. 흔쾌히 찍어드렸고, 그런 김에 나도 하나 부탁해서 찍었다.
그 분들은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또 말이 트인 김에, 오늘 양키스 프로모션 유니폼 행사 있는 거 아냐고 물었고 어떻게 받는지 물었다.
게이트 앞에서 선착순인 것은 알았지만, 열린 후인지, 열리기 전인지, 또 열리기 전 대략 몇 시부터 줄을 서야하는지 물었고,
어려운 질문에도 딸은 4시 30분에서 5시경에 줄 서면 아마 받을 수 있겠지만, 개런티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난 감사하다고 했고 그렇게 투어를 마치면서 헤어졌다.
그날 내가 미리 줄을 섰고 이후 동행자도 후드티를 받을 수 있었다. 야구장 들어가자마자 후드티를 입었다.
그렇게 사진을 몇 컷 찍고 있는데,
아뿔싸, 그 딸과 아빠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아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엊그제 할머니가 떠오르던 찰라였다.
뭐지? 사실 할머니를 만난 것도 너무 말이 안돼서 무섭기도 했고, 약간의 의심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에게 사진 찍어달라고 먼저 말을 걸었던 그 딸이 또 내 앞에 나타난다고?
나를 따라다니나? 정말 이상했다.
나는 동행자에게 아까 2시에 투어했을 때 나에게 사진찍어달라던 사람인데 또 만났다고 했고,
동행자는 정말 신기해했지만 뭐 그럴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게 맞다.
그런데 할머니와 박찬호를 우연히 다시 만난 나에겐 다른 일이었다.
난 동행자의 표에 따라 이끌려서 그 자리에 간 것이고,
그 분들은 가족이고 유니폼을 입고 온 현지인이었는데 수만명이 들어가는 야구장에서 옆 자리라는 게 말이 되는 건가?
동행자도 저들과 한 패 인가? 이런 생각도 5% 정도 들었다.
[사건5: 야구에서 뮤지컬로]
야구장에서 줄을 설 때 어떤 아저씨 한 분이 내 옆 벤치에 계셨다. 역시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또 난 유니폼 받는 방법에 대해서 물었고, 줄을 언제부터 서면 될지 가볍게 물었는데,
너무나 친절하게도 자신이 아들과 줄을 서 있으니, 너도 와서 같이 이따가 붙으면 된다(한명이 대표로 서고, 나머진 새치기? 형식)
그래서 내가 그거 새치기 되는 거 아니냐, 했더니 원래 이렇게 해도 된다고 하셨다.
감사하다고 하고 음료수도 하나 드렸다.
이후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들이 왔는데 그 아들에게 한국인인데 줄을 같이 서려고 한다. 도와주자.
이런 모양이었고, 따라 갔더니 아들이 줄을 서고 있고, 작은 아들도 엄마도 있었다.
아빠와 엄마는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대기하시게 했고, 아들 2명과 나는 줄을 섰다.
그러면서 2명의 아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큰 아들은 일을 하고 있었고, 자세한 직업은 모르지만, 꽤 교양이 있고, 삶에 대해 깊이가 있었다.
영어도 내가 알아먹을 수 있게 쉬운 영어로 말해주고, 내가 지루하지 않도록 야구에 대해서 서로 얘기를 계속 나눴다.
작은 아들은 아직 어린 느낌이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이 너무나 잘 생겼었다. 로버트 패틴슨을 닮았다 생각했다.
그렇게 줄을 서고, 유니폼을 받으면서 그 분들과의 만남은 해피하게 종료됐다.
서로 여행잘하라고 하면서 헤어졌다.
동행자는 늦게 와서 나와 그들이 무슨 사이인지 정확히는 모르고, 뭐지? 하면서 웃으면서 나를 따라서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다음 날이다.
나는 뮤지컬 시카고를 예매해둔 상황이었고, 이번에는 내가 산 표 2장 중 1개를 다른 분에게 양도하면서 같이 보았다.
뮤지컬을 다 보고 헤어지면서 동행자와 같은 지하철을 탔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그 분이 먼저 내리게 됐다.
그 분이 내린다고 하면서 내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그 바로 뒤에 앉아있던 사람이
야구장에서 같이 줄을 섰던 그 남자 둘째 아들이었다.
아마도 내가 지하철을 탈 때 각도상 그 사람은 분명 나를 봤을 거라 생각한다. 사람이 그리 많진 않았다.
만약 못봤을 수도 있는데, 어쨌든 동행자가 비게 되면서 그 아들과 내가 정면으로 바라보는 70cm 거리 정도..
되는 상황이었는데 나는 순간적으로 뻘쭘해서 바로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 사람도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이것은 보통 겸연쩍은 순간에 일어나는 일로 분명히 아는 사람인데 안다고 하기도 뭐하고 아니기도 뭐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 사람에게 말을 다시 걸진 않았는데 분명히 맞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브라질계 미국인이었고, 생김새가 남미스러우면서도 고급스러운 백인 느낌이라서, 뉴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얼굴이 아니었고,
전술했듯이 너무 잘생겨서 잊을 수 없는 얼굴이라 바로 알아 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래서 이게 말이 되냐는 것이다.
그날은 집에 가는 길은 조금 무서웠다.
할머니, 딸과 아빠, 아빠와 아들, 이렇게 연결되는 구조인데 불과 며칠 사이에 우연이라는 게 이렇게 오버랩될 수 있는 것인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먼저 말을 걸었던 앞선 두 차례와 달리,
이번에는 내가 늦게 지하철을 탔는데 마침 그 지하철 그 칸에 그 사람이 있었으니, 적어도 날 따라온 건 아니라는 것에서 안도했다.
그래도 이것은 이상한 일이다 생각했고,
그 날 밤은 유뷰브에 , “삶의 연결” 따위로 검색을 하면서, 이러한 우연성에 뭔가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인지하기 시작했다.
[사건6: 라이온킹 ]
[사건7: 뉴욕행 비행기에서 뉴욕발 비행기로]
[사건8: 나이아가라 동행과의 운명]
[사건9: 삶은 서클 그리고 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