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 ..
작년 방송연기대상에서 두 명의 악당이 상을 받았다. MBC에서는 ‘연민정’이 KBS에서는 ‘이인임’이 상을 거머쥐었다. 이들의 특징은 각각 ‘장보리’와 ‘정도전’이라는 인물을 타이틀로 내건 드라마에서 주인공과 대립하는 악역을 연기했다는 것이다. 연기가 호평을 받으면서 ‘이유 있는 악역’, ‘국민악역’이라는 수식어도 붙게 되었다. 특히 연민정의 역할을 한 이유리는 조연배우로 주인공을 못살게 구는 악당의 역할이었음에도 연기대상의 영예를 얻게 되었다. 수많은 악행의 대가로 위기를 겪으면서도 다시 일어나 자신의 목표를 향해 독하게 나아가는 연민정의 모습은 매혹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이처럼 드라마에서 악역이 조망을 받는 경우가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선과 악이 분명하게 결정된 시나리오가 아니라면 악역이라 할지라도 그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악당은 언제나 존재한다. 이런 명제 속에서 주인공은 대체로 선하고 상대는 악하다. 이는 우리의 삶과도 비슷하다. 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내가 악당이 되는 일은 드물다. 각자의 인생은 자신을 중심으로 펼쳐나가기 때문에 악역을 자처하는 경우는 드물다. 모두가 지탄을 해도 꿋꿋이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주인공들을 우린 자주 목격했다.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그들은 자신의 드라마에서 주인공 역할이고 자신을 지탄하는 상대가 악역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수많은 사람이 모여 만들어가는 우리사회는 주인공이 제각각 다른 수많은 드라마의 향연이다. 악당도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절대적인 악당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내가 주인공인 것같이 나와 같은 수많은 사람이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내가 원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드라마 속에 포함된다는 사실 역시도 인지해야 한다. 내가 선한역인지 악한역인지는 순전히 타인의 판단에서 비롯된다. 누군가 나를 악당이라 칭해도 거부할 수는 없다.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누군가의 드라마에서 한 번도 악당 역을 안 해본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악당의 의미는 상대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 사회에는 수많은 싸움과 대립이 존재한다. 악당이 판치는 세상이다. 좌우 진영의 정치대립,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대립, 흑인과 백인 사이의 갈등 등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일은 너무나 많다. 간혹 이들의 싸움은 어느 한 쪽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대가 쉽게 사라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들이 나눈 선과 악은 구분은 절대적으로 유효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적더라도 악당의 입장을 들여다 볼 여지가 있다. 악역인 그들 혹은 누군가에게 악당인 나는 나름의 건전한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악당인지 편가르기는 지양해야 한다. 그 사이에서 작은 공감대를 찾을 수만 있다면 ‘다름’의 차이를 인식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무조건적인 포용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악당이 있기 때문에 영웅도 있다’는 말이 있다. 합리적인 경쟁 속에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악당의 역할 역시도 배척하지 않는 것. 한 번쯤은 해볼만한 일인 것을 요즘 사회, 요즘 드라마는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