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  합리주의

먹방 ..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밥 먹으러 갈 때 종종 듣게 되는 말이다. 지겹지만 맞는 말이다. 먹어야 살고, 살아야 또 먹기 위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또 먹는다. 한 숟가락이 넘어갈 때마다 행복해지고 포만감에 차면 그렇게 욕구가 해소된다. 아주 동물적인 원시적 본능이다. 끊을 수 없는 중독된 습관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 퇴근 때가 되면 이 말을 또 한번 듣게 된다. “아 그만 일하고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일은 내일 합시다”

이 사람은 지금 일을 그만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지금 뭘 먹고 싶은 것일까. 분간이 잘 안 되지만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더 이상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 지금 이 사람은 욕구의 수치를 올려주어야 한다. 당이 떨어진 것처럼 ‘욕(慾)’떨어진 것이다. 때때로 이들의 본능은 밥에서 끝나지 않는다. 밥을 먹다 술을 먹고 거나하게 취한 후 집으로 돌아간다. 3차가 4차로 또 5차가 되면 욕망은 더욱 발전한다. 급기야 이들은 성욕까지 해소하려 든다. “다 즐기면서 살자고 하는 짓인데…” 라고 말이 바뀐다.

매슬로우 욕구체계를 부정한 지 오래됐다. 자아실현의 욕구가 맨 꼭대기에 있는 그 피라미드를 말한다. 생리적 욕구가 맨 아래에 있다. 최근 우리 사회를 보면 이론은 더 이상 맞지 않다. 사회적으로 많은 것을 이룬 사람들이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타락하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 윤창중, 박희태, 벤츠여검사, 떡검 등 부지기수다. 홍준표는 5개월 동안 식사비로 국고 1억 5천만원을 썼는데 대상만 달랐을 뿐 본능을 충실히 이행했다. 이들은 자아실현을 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성공했지만 그 차원을 넘어서니 생리적 욕구로 다시 회귀했다. 내가 만든 욕구체계에서 가장 꼭대기에 있는 것은 생리적 욕구이다. 식욕과 성욕이 투톱이다.

요즘 걸그룹의 옷은 더욱 짧아졌다. 동작은 과감하고 때론 성행위를 연상시킨다. 도발적인 모습으로 화면 밖을 유혹하고 있다. 아무도 자아실현의 경험을 공유하려 하지 않는다. 생리적 본능을 유발하는 것이 당연시 된다. 섹스어필은 철저히 상업화됐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됐다. 자연스럽게 욕망의 간접 경험을 통해 그것을 해소하려는 사람들은 그들의 다리 밑에서 플래시를 터트리고 있다. 하지만 섹스어필은 조금 과한 면이 있다. 또한 대중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부모님이나 아이들과 같이 티비시청을 하기 거북하기 때문이다.

욕구해소를 위한 대안으로 등장한 게 식욕일지도 모른다. 누구와 같이 봐도 무리가 없고 아무도 문제 삼지 않으며 쉽게 원초적 본능을 해소해준다. 우리는 그들의 먹방을 보며 나도 모르게 침이 고인다. 중독된 욕구이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대리만족을 하게 된다. 또 이를 해소하기 위해 같이 먹기도 한다. 이런 습관은 자연스레 먹방을 보는 것이 욕구를 해소하는 수단인 것으로 인지하게 한다.
그러나 피동적이거나 부지불식간에 소화하는 것은 다소 삶의 본질과 동떨어진 하등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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