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젊은작가상 ‘더 인간적인 말’
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여기 수록된 단편 중 ‘더 인간적인 말’(정영수)에 대해서 포스팅한다.
현재 참여중인 ‘책다방’ 프로젝트에서 읽은 책이다.
‘책다방’에 대해서는 추후에 소개할 예정이다.
소모적인 논쟁에 지쳐 이혼을 결심한 부부에게 안락사를 결행하러 스위스로 떠나려는 남편의 이모가 나타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나가는 이모를 보며 부부는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배운다. 결국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와 말의 한계를 섬세하게 드러내 보이는 작품.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인간적’의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적인 말’은?
토론을 좋아해서 만나 결혼해 살고 있는 부부에게 권태기가 찾아왔고, 늪처럼 빠져들어간다. 토론은 항상 적대적으로 끝이 나고, 상처만 남게 된다. 이혼까지 결심하게 되는 그들은 도대체 왜 싸우고 있을까.
상대는 내 말을 듣지를 않고, 이해도 못하며 자기 주장만 한다. 토론을 좋아했던 그들조차도 이제는 상대를 포용할 자리가 남아있지 않게 된다.
논리적 ‘인간’인 이들에게 ‘인간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인간적이어야 한다면 그것은 비단 가장 약자에게 향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이 소설에서는 가장 아픈 사람으로 존엄사를 선택한 이모를 등장시킨다. 이모에게 이들 부부는 생각을 돌리려 어떤 말이라도 건내본다. 이모의 동생인 엄마도 나서지만 이모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그렇게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모의 주장을 따라 이야기는 전개된다. 존엄사의 이유도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단지 한 사람의 ‘결정’과 ‘선택’만 존재한다.
이 부부는 이모의 잔인한 선택을 따라 나름의 ‘인간적’인 태도로 설득하고, 스위스까지 따라 나선다. 그러나 결과에는 변함이 없다. 마지막 순간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변화시킨 것은 없었다.
이모에게 ‘더 인간적인 말’을 못해서일까? 혹은 그들이 태생적으로 충분히 인간적이지 못해서일까? 그들은 인간적인 사람이 되는 것에 실패한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애초에 ‘인간적인 말’이라는 대상이 사라지게 되는 지점이다. 이모의 선택은 이유가 없음에도 자기결정의 완결성을 가지고 있다. 그 앞에서 어떤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이다.
아프고 힘든 사람에게 ‘힘내’, ‘아프지마’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인간적인 말이 아닌 게 된다. 위로는 말이 아니라 감정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 주장이 아니라 이해로 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우리의 태도, 이 부부의 태도는 무엇인가? 단지 그것을 따르는 것뿐이다.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더 인간적인 말’이란 없다. 그저 이해와 동조, 그저 팔로우(follow)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팔로우는 지켜보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인간적이냐는 것이다. 따질 필요도 없이 한 인간의 선택을 묵묵히 따라간다.
휴머니즘은 무엇인가. 그 답은 이모를 따라나선 스위스에서 확인한다. 상대의 입장과 주장에 대해서 그저 따른다. 인정하는 것도 아니며,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순서와 절차를 팔로우하는 것이다. 이는 말이 아닌 행동이다. 이 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인간성, 인간다움이었다.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마음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더 인간적인‘이란 말은 존재하지만 ‘더 인간적인 말‘의 한계는 분명하다.
더 인간적인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 더 인간적인 팔로우
/ 2018. 5. 16. / 5. 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