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다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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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2018)
잘 기억이 안나지만, 오늘의 저를 있게 한 스승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나를 귀여워 해주신 노자경 선생님(유치원), 잠깐의 위기에서 나를 감싸주신 서정만 선생님(초4), 인생의 터닝포인트이자 자식처럼 사랑해주시고 나의 모든 어려움과 눈물을 받아주신 존경하는 박정환 선생님(중1) 사춘기 시절 거칠기만한 나의 성격을 인식시켜주신 체육 선생님(중2) 학창시절의 두 번째 위기에서 할아버지처럼 자상하게 나를 인도해주신 참스승, 나의 일탈을 껴앉아주시고 3년간 더 가르쳐서 나를 서울대로 보내시겠다고 하셨던 분. 한주상 선생님(중3) 나의 감성과 인성을 칭찬해주시고 내가 하교길에 길가의 강아지랑 한참을 노는 것을 지나가다가 자주 보셨다던 김종인 선생님(고1) 회장 선거 출마, 정치적(?)대립으로 시끄러운 환경에서 묵묵히 내 길 걸어가게 해주신 장기수 선생님(고2)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신 정환기 선생님(고3) 풍선을 툭툭 위로 치듯 무한한 칭찬으로 나를 붐업 시켜주신 이인성 교수님, 김아연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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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불평등
인간이 만든 시간은 공평하지만 인생이 만드는 시간은 불공평하다. 흐르는 시간은 공평하지만 공유하는 시간은 불공평하다. 생과 사는 공평하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 201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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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와 폭력 사이의 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저는 이렇게 믿어왔는데 맞습니까? 참인가요? 그렇다면 어떤 임금이었죠? 분명히 설화 안에서는 사실로 보이거든요. 그럼 목격자는 누구였죠. 이발사? 맞습니다. 마침 혼자였고요. 그 사람은 사실을 말했을까요? 믿습니까? 만약 거짓말을 했다면요. 여전히 참일까요? 모르는 거지요. 언제부터 ‘폭로’가 참이 되었을까요? 네, 폭로는 감춰진 사실을 드러낸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폭로’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면서 단어의 신뢰도가 떨어진 것이 현실이죠. 반면 ‘해명’은 핑계에 가깝게 느껴지죠. 이는 분명 기울어진 대립입니다. 사실의 개연성을 살피는 것과 그것이 참이 되는 것은 엄연히 다르죠. 아무렇게나 쏟아내는 어뷰징 기사들과 그것을 즐겨 담아내는 우리는 이런 불확실의 위협에 노출돼 있어요. 또한 우리는 누군가의 폭로를 자신의 처지와 생각에 맞게 믿는 경향이 있고요. 더 많은 폭로가 거듭될수록 그에 호응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것이 기울어지는 원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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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감사하지 않은 일이 없다.
문득 감사한 일들이 많았다고 느껴진다. 미래를 위해 필요한 과거를 정리하면서 느낀다. 하나씩 돌이켜보니 정말로 감사한 일이 많다. 나 스스로에게도 감사하다. 포기하지않고 나아온 것에 대해 대견하다. 그리고 함께 해준 많은 일들과 사건들 그 시간들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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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집과 직장 / 서쪽이 길하다.
성인이 된 이후의 나의 거주지는 대체로 서쪽으로 이동한다. 스무살에 서울 중랑구 신내동에 터를 잡았고, 군 제대 후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자취를 했다. 졸업 후에는 친형과 함께 안양 인덕원에서 살았다. 그 다음은 관악구(중앙동, 신림동, 대학동, 서울대)에 4년 있었다. 그리고 여기 마포구 아현동으로 이사한다. 이때는 아주 미세하게 서쪽으로 이동했다. 최초 월세 10만원짜리 집에서, 다음은 전세 3,500만원 집으로, 안양 인덕원 아파트는 당시 시세로 6억~7억 정도 했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형이 결혼하면서 나는 다시 원룸으로 이사했다. 관악구에서는 전세 4천~5천 정도였고, 서울대 기숙사에도 잠시 살았다. (대학원 1학년 때 신림동에서 살았던 집이 WORST였다.) 대학원 졸업 후 본가와 집을 합치면서 지금의 마포구로 이사왔다. ‘마래푸’라는 단지로 왔는데 처음에 4억도 안되던 집이 지금은 10억을 넘어섰다. 역시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직장 위치는 용인시 처인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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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의 감정에 대해
인생을 살면서 새로운 어떤 막이 오르는 것에 대한 인식은 대개 이성적이다. 반면 그 막이 끝나 마쳐질 때의 마음은 흔히 감성적이다. 어떤 연유로 바뀌게 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시작할 때의 일과 사건들, 계획에서 끝으로 오는 과정에서 겪은 사람과 관계들로 대상이 전이되기 때문이 아닐까? 무대 위에서 모든 걸 쏟아붓고 난 후 느끼는 공허함도 비슷하다. 시작은 정신 없는 논리적 리듬 안에서 움직였다면, 끝난 뒤엔 그 사이 놓쳤던 잃어버린 시간을 조명하는 것이다. ㅡ 끝의 감정에 대해 / 201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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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온 감귤 한 상자에 담긴 농부의 마음
아는 분을 통해서 제주에서 귤 한상자가 왔는데 생긴 것들이 다 올망졸망하다. 그런데 색깔이 노랗다가 푸르스럼하고 까맣기도 하다. 게다가 왜 이렇게 상처도 많은지 먹을 수는 있을지 싶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올해 세 번이나 온 태풍이 모두 제주를 지나갔던 게 생각난다. 귤을 수확하던 농부가 태풍 앞에서 얼마나 마음 졸였을지 생각하면 애처롭다. 그리고 이 귤들을 담는 심정은 또 어떠했겠는가. 사연을 상상하니 작은 귤 하나에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못생기면 어떻고 맛이 없으면 어떤가. 그래도 이렇게 내게로 와 값어치를 충분히 했음이 고마운 일이다. 201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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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아이였을 때는, 어렸을 때는 즐겁게 춤을 추는 것이었다. 잠시 멈추는 모습이 담고 있는 그 즐거움까지도 하나의 묶음이었다. 지금의 때에 그것은 분리되었고 즐거움과. 춤과. 취하고. 흔들리는. 것들은 모두가 이제 별개가 되었다. 그렇게 멈췄다. (18. 11. 1.) 지금 내 마음을 지나고 있다. 순간 이미 지나쳐버렸는지 모른다. 항상 이렇게 손살같이 사라진다. 한번 지나쳐간 마음이 돌아올 땐 처음과 다르다. ‘너였구나’라는 말은 마음이 아닌 머리에 남는다. (18. 10. 15.) 나는 물을 머금고 있는 댐입니다. 요며칠 비가 왔어요. 군데군데에서 젖어듭니다. 그리고 무겁네요. 내 안은 지금 습하고, 춥고, 어둡네요. 이러다 무너질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요. 부서질 것 같으면 내보내면 그만인 것을 왜 보듬고 있냐고요. 모르겠어요. 이런 거였다면, 이렇게 될 지 알았다면 애초에 댐이 되지도 않았을 거란 마음뿐이에요. 물은 우울하게 고여있다 이내 곧 큰소리를 내며 무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