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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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가는 것들
시간이 많지 않다는 느낌이다. 줄어든다는 의미다 뭔지는 모르겠다 단순하게 촉박하다 죽어가는 나의 생명일지도 떠나야하는 직장인지도 어떤 취미인지 혹은 어떠한 관계인지 모래가 쏟아지는 시계의 상부 측이다 어떤 한정된 시간 혹은 기간 날 기다려주지 않는 촌각 소모되는 정신 누워버린 오르막 지친 건 맞다 무엇인가에 혹은 자연스럽게 줄어가는 것이다 허공에 혹은 찰나에 그러면 단순히 시간에 지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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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2014) 정주행
미생을 처음으로 정주행했다. 2014년에 나온 드라마를 못봤던 이유는… 당시가 내게는 미생이었던 시기라서… 바빴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의 미생을 지나오고도 한참이 흘렀고 그렇게 10년을 지나왔다는 게 새삼스럽다. 참 좋은 드라마다. 일터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완생의 가능성을 남겨둔 바둑의 돌을 미생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이제는 놓아야 하는, 놓아주어야 하는 돌을 던져야하는 그러한 상실을 마주하는 자세 그것이 미생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다만, 추가하자면 그것은 ‘포기’보다는 ‘재도전’일 것이다. 미생의 삶, 상실의 삶… 상실의 시대에서 미생을 정주행했다. 2024. 5. /미생, 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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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의자의 과대평가
과대평가와 평화주의. 최근 2년 정도 삶을 통해 나타난 나의 특징이다. 무슨 일이 생기거나, 어떤 행동을 보게 되면 그럴만한 어떤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한다. 의도적인 건 아니다. 그냥 당연하게 그렇게 보는 시각을 가졌다. 과거에 연습을 했던 적도 딱히 없는데, 자연스럽게 탑재된 스킬이다. 이게 사실을 분명하게 파악하는 데는 부족할 수 있지만, 별일 아닌 일들에 너무 함몰되지 않게 해주는 느낌이 있다. 나쁜 행동과 말이라고 생각되는 것들도, 그 이면에 오늘 컨디션이 안좋거나, 어제 잠을 못잤거나 또는 어떤 피치 못할 계기로 그렇게 하는 거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게 사실 맞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사람이 딱히 나에게 큰 억하심정을 가진 게 아니므로 이해할 수 있고 서로의 간극을 줄 일 수 있는 것이다. 이해와 포용의 측면에서 과대평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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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쁨을 구성하는 것들
그냥 바쁘다. 마음이 바쁘다. 이건 계획과 실행 능력 부족이 맞다. 회사는 일이 항상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을 인생의 90%까지 가져간 적도 있는 듯하다. 사실 거의 100%였던 때도 있었다. 그게 지금을 만드는 뿌리와 영양분이 됐을 수는 있지만, 돌이켜보면 100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아쉽다. 아쉽지만, 아직도 개선 방법을 잘 모르겠다. 이것을 30~50%까지 조정을 해도 회사에서 업무 공백없이 훌륭하고 탁월하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 능력을 갖추는 게 우선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손을 놓으라는 게 아니다. 책임감은 포기하면 안되는데 이것을 조정하는 방법은 잘 모르겠다. 그렇게 잘 줄여진다면, 나머지 70%를 자기 인생을 위해 써야한다. 가족, 친구, 동료, 사랑, 연인, 책, 영화, 문화, 여행, 글쓰기, 대화, 관계, 명상, 철학, 상념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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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 성급한 일반화
성급한 일반화 오류가 빈번한 조사. 상대를 규정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 51대 49. 2점이 높아 나온 알파벳이 극단적 경향으로 치부되기도. 2점 때문에 나와 다른 알파벳이라며상대를 배척하는 명분이 되기도. 상대를 사람으로서 이해하고 포용하는 차이를 줄이고 다름을 인정하여 더 나은 관계를 맺기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함. 대부분은 좋은 예로 사용하지 못하는 느낌. 자꾸 그러한 성급한 규정을 통해 갈등을 조장하는 사례도 있음. 다이너마이트도 좋은 쪽으로 사용할 수 있듯이 MBTI도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이용하면 좋겠다. 성급한 일반화 MBTI / 202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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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9일 일요일
아직 살아있다. 오랜만에 들어왔다. 예전 같지 않은 것들이 있다. 몸, 마음. 그래 정신과 육체다. 이대로 계속해서 시간은 흐른다. 시간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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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는 길(feat. 소년이 어른이 되어, 싱어게인2)
어른이 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어른이 되어가는 중에야 알게 되는 것일테죠. 그리고 꼰대도 어른이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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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의 소회, 나를 사랑하자.
지난해 행감과 예산을 거치고, 이번에 결산을 마쳤습니다. 모두 다 뭘 했는지도 모르게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에 대한 짧은 소회입니다. 한 마디로는, 오늘은 귀가하는 집에 어머니가 계셔서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마디로는, 너무 많은 마음들이 읽혀지고, 표정과 행동이 따갑게 들려오고요.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 대부분이 불만족과 서운함을 느끼죠. 그 중 단 한 사람도 나의 입장이 되본 적이 없는 환경이죠. 이것은 무엇일까요. 성취가 없는 공허한 고독. 승리라는 것은 애초에 없었지만, 감정적인 방어기제는 패배처럼 느껴지죠.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그것들을 일일이 풀어줄 수 없는 한계를 앉고, 오히려 감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게 숙명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 길을 가는 것이 무엇을 위함인지, 어떤 결과를 낳기 위함인지 불확실하고요. 씁쓸함 속에서, 이대로 묵묵히 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됐고요.…